외국 학자들이 말하는 동이족(東夷族) 지금의 중국 중심부, 이 지역의 역사를 논할 때, 해동성인(海東聖人)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도 동이족,주역과 역법(曆法)을 창안했다는 희화자(羲和子)는 물론,농사법과 의학을 발전시켰다는 염제신농(炎帝神農)도 동이족이다. 동양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최고의 성군(聖君) 요(堯)임금과 순(舜) 임금,최초로 철갑(鐵甲)에 구리투구로 유명한 치우(蚩尤)천황도 동이족,갑골문자, 상형문자, 표의문자, 한문자(漢文字)를 만든 것도 동이족,절개로 유명한 백이(伯夷)와 숙제(叔弟)까지도 동이족이다. (1) 서량지(徐亮之) 교수 :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韓甲洙) 선생이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때, 같은 입학생인 대만학자 서량지가 한박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서, 문자를 창제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뜻으로 절을 하렵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한국식으로 넙죽 큰 절을 올렸다 한다. 서량지 교수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1943년10월초판)에서 이렇게 썼다. “4천 여 년 전 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苗族=東夷)이 점령하여경영하고 있었다. 한족이 중국에 들어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하였다.” “중국의 책력법(冊曆法*달력)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殷)나라, 상(商)나라의 동이족(東夷族)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법은 사실 동이가 창시자이며, 소호(小昊)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2) 장개석(蔣介石) : "당신들의 선조는 대륙의 주인이었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소? 그러니 나라를 빼앗겼지." (3) 임어당(林語堂): 안호상 :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나라는 한글전용에 문제가 많다." 그러자 임어당이 놀라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임어당 :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자는 당신네들 동이족 조상이 만든 문자를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습니까?" (4) 왕동령(王棟齡) :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현재의 호북(湖北),호남(湖南), 강서(江西) 등 지방은 본래 묘족(苗族=東夷)의영속지였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이(九夷)인데 임금은 치우(蚩尤)였다.” (5) 임혜상(林惠詳) 교수 : "맹자가 말하기를「순(舜)임금은 동이(東夷)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니, 오늘날 우리가 순(舜)임금은 은(殷)나라 사람의 조상임을 추측하여 알 수 있다. 은나라 사람이 바로 동이인데 동방에서 흥기(興起)하였다." (6) 일본학자 고꾜 야스히꼬(吾鄕淸彦) : “사마천의《사기(史記)》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놓은 것이다.” (7) 소련의 역사학자 시로코고르프 : "BC 3,000년경 동이족은 이미 황하 양자강 서강의 중류이동(中流以東)의 중간 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의 나라인 강회(江淮)지방에 진출하였다.
중국의 조상인 삼황 오제는 모두 동이족.(2) 우리는 중국의 조상이라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삼황(三皇)으로 태호복희(太皞伏犧),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꼽고, 오제(五帝)란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도당(요임금) 그리고 제순유우(순임금)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러한 중국의 삼황오제가 모두 우리와 혈통이 같은 동이족이라는 사실이다. 2) 염제신농(炎帝神農) 신농은 소전(少典)의 아들이고, 소전은 소호와 함께 모두 고시(高矢)씨의 방계이다. 즉 동이족인 것이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농은 강수(姜水)에 살았기 때문에 성을 강(姜)씨로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태백일사>에서는 치우가 강수에 살았기 때문에 자손들이 강씨라는 기록이 있다. 어느기록이 옳은지는 알 수 없으나 여하튼 모두 동이족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한 강수가 어디인지 <중국지명대사전>으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단군세기” 「단군왕검조」에 보면, 단군왕검은 무진 원년(BC2333년) 도읍을 아사달로 옮기고 신시의 옛 규칙을 찾고 국호 배달나라를 조선으로 고쳐서 선포한 후에 고시를 농사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임명하여 농사를 관장하게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고시의 집안은 한웅천왕 때부터 단군왕검에 이르기까지 약 1,600년 동안 신시, 청구, 조선을 거치면서 농사를 관장해 온 집안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신농보다 훨씬 이전에 농사를 담당하던 고시는 신농의 조상이자 우리의 조상이었다. 지금 중국에서는 황제 헌원 이전의 역사를 자기들의 역사로 편입하고 만들기 위하여, 그리하여 황제 헌원의 시대를 뛰어 넘어보려고 80년대부터 서서히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의 건립이다. 여기에 모셔진 중화민족의 세분 조상을 염황치라 한다. 염황치란 염제 신농, 황제 헌원, 치우천왕 세 분을 뜻하는데 황제는 행정의 신, 신농은 농사의 신, 치우는 전쟁의 신으로 둔갑시켜 이들이 중화민족의 삼조상(三祖上)이라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우리 민족의 삼황은 누구인가? 우리 민족은 인류의 조상인 나반을 대선(大先)의 天, 한인을 대중(大中)의 天, 한웅을 대웅(大雄)의 天, 치우를 지위(智偉)의 天이라 한다. 한인(桓因).한웅(桓雄).치우(蚩尤)를 3황이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삼황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기네 조상으로 삼황을 동이족에서 빌려가서도 모시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조상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우리는 아버지도 조상도 없는 의붓자식이란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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