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추간판탈출증·추간판장애)란 병은 없습니다.
척추관협착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들의 상상력과 상업성이 만나서 만들어진 ‘환상 속의 괴물’에 불과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는 다름 아닌 정형외과 전문의다.
종합병원 봉직기간을 포함해 30년 가까이 디스크나 협착증을 비롯한
이른바 허리병 혹은 관절질환 환자들을 치료해온
부산의 정형외과 전문의 황윤권(59·사진)씨다.
그는 최근 펴낸 <디스크 권하는 사회>(에이미팩토리)에서
일종의 ‘내부자 고발’을 감행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 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받은 환자는 2013년 400만명에 육박했다.
2014년에도 두 질환을 비롯한 척추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260만명,
진료비는 3조8760억원이다. 이 가운데 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으로
수술까지 받은 환자도 10만3000명(진료비 3140억원)에 이른다.
추간판탈출·척추관협착증 ‘급증’
환자 1260만에 진료비 3조8천억대
“그런 병 없다” ‘내부자 고발서’ 펴내 80년대 중반 무제한 검사로 ‘양산’
“통증 원인은 신경 아닌 근육 긴장”
스트레칭·두드리기·누르기로 치료
이들이 모두 없는 병을 앓고 있단 말일까?
지난 1일 만난 황씨는 환자들의 고통과 증상은 모두 사실이지만,
병원에서 진단하듯 그 원인이 디스크가 튀어나와
척추신경을 누르기 때문(추간판탈출증)이거나
척추관이 좁아져 척추관 속 신경을 누르기 때문(척추관협착증)이 아니라고 말했다.
“환자들이 찾아와 허리나 엉덩이 통증을 호소하거나
엉덩이와 다리가 저리다고 하면 의사들은 대개 엑스레이를 찍고,
더 심하면 엠아르아이(MRI)를 찍어보자고 합니다.
그러곤 디스크가 튀어나온 영상을 보여주고 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낫지 않습니다. 수술 뒤 나았다가도 재발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십수년 전부터
협착증과 디스크 수술 과정을 수없이 지켜봤다.
“의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진단명을 의심만으로 뒤집을 수는 없었다”고도 했다.
수술 과정을 지켜본 결과, 우리가 상상하거나
엠아르아이 영상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척추신경은 실제로는 눌려 있지 않았다고 했다.
“병원에선 척추신경이 눌린 결과 허리에서 엉덩이·다리까지 이어지는
통증이나 저림 증세가 나타난다고 설명하는데
정작 척추신경은 통통한 원래 모양 그대로 잘 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옛 우화에 견줬다.
“임금이 벌거벗었는데 아무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시티나 엠아르아이가 등장하면서
무제한으로 검사를 하고 환자들을 양산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싼 엠아르아이 검사나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수술 뒤 일시적으로 낫는 것은
수술 중 마취제가 근육을 일시적으로 풀어준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병원에서 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이라 진단하는 통증은
해당 부위 근육이 굳어져 생긴다고 본다.
근육은 본디 길이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운동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일정 기간 그런 변화(운동)가 없는 긴장된 순간이 반복되면 굳어진다.
말랑말랑해야 할 근육이 굳어져서
근육 속 말초신경이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릴 적 두 팔 들고 한참 벌을 서면
팔이 저리고 아픈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따라서
그는 디스크, 척추관협착증이란 병명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이 많은 환자라면 퇴행성 근육통,
젊은 환자는 긴장성 근육통으로 재명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들은 허리가 아프다, 엉덩이가 아프다,
다리가 저리다 호소하는데 대부분 의사들은
아무 관계 없는 척추신경을 이야기합니다.
실제로는 허리 근육, 엉덩이 근육, 다리 근육이 아픈 겁니다.”
그의 치료 원리는 간단하다.
굳어진 근육을 풀어주는 것. 스트레칭하기, 두들기기, 눌러주기다.
책에는 그 방법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굳어진 근육은 스트레칭만으로는 잘 풀리지 않는다.
매끈한 돌이나 방망이, 지압봉 같은 도구로 통증 부위를
“까무러칠 만큼 아프도록” 두들겨야 한다.
하루 10분씩 꾸준히 두들기고 스트레칭을 해주면
3~4주 정도면 확연히 좋아지고 낫는다고 했다.
해당 근육이 오랜 세월에 걸쳐 굳어진 것은
푸는 데도 꾸준하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희대 의대를 나와 1987년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딴 그는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도맡아 하다 2001년 부산에서 개업하고 있다.
그의 병원은 ‘3무’를 표방한다.
엑스레이, 엠아르아이가 없고 약 처방도 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환자들의 통증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스트레칭·두드리기·눌러주기로 아픈 근육을 푸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런 방법으로 많은 환자가 나았다고 했다.
그는 정형외과학회나 동료 의사들의 논쟁을 기다리고 있다.
“정형외과든 신경외과든 재활의학과든 통증의학과든
동료 의사들이 공격적인 반론이든 호응이든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단, 제가 쓴 책을 읽고 나서 반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허미경 선임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