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40자

0과 10

조선선인 2018. 9. 6. 21:10



무형의 0이 살아서 움직인 결과가 바로 색(色)이라고 하는 건데, 그것은 九色으로 벌어진다. 흔히 말하는 ‘구색(具色)을 갖추다’는 말은 곧 九色을 가리킨다. 공즉색(空卽色) 색즉공(色卽空)은 이와같은 무형의 0이 살아 있는 모습을 가리킨 말씀이지, 결코 죽은 0에서는 불가능하다.


0과 10의 0은 본래 동일하지만, 0은 진공(眞空)상태를 가리킨 것이고, 구색을 갖춘 0은 10이라고 한다. 이걸 성경 식으로 말한다면 ‘0은 하나님’ 자체이고, ‘10은 만물 속에 내재한 하나님’이라는 말이 된다.




0은 반드시 1에서 9에 이르는 아홉 개의 숫자를 통해 그 실상을 나타낸다. 아홉 개의 숫자는 0이 드나드는 통로다. 이런 이치에 의해서 인체에서도 아홉 개의 통로를 통해서 영(靈)이 드나들게 마련인데, 그 아홉 개의 통로를 가리켜 구규(九竅)라고 한다.


9규는 얼굴의 7개의 구멍과 하체의 2개의 구멍을 합한 셈인데, 9수를 넘겨야 비로소 만물의 근원인 신령한 영(靈)으로 돌아간다는 걸 보여준다. 이 아홉 개의 구멍은 영혼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하는데, 흔히 말하는 ‘영문도 모른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즉 영문은 靈門(영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할 수 있으니, 우리 민족이 유독 다른 민족에 비해서 조상신명들을 받들어 모시는 제사를 미풍양속으로 삼은 것도 이와 같은 영문을 알기 위함이었다.


우리민족은 또한 ‘아홉 수’에 관한 ‘트라우마’(trauma :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가 있으니, 예를 들면 아홉 살이 되는 해에는 혼인을 기피한다거나 이사를 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잠재적인 의식의 바탕에는 9에 관한 안 좋은 이미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즉 본래의 0으로 회귀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9에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닐까?


여하튼 하도에는 10을 통해서 0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은 반드시 9를 통과해야 한다. 이처럼 열 개의 숫자를 다 보여주는 하도와는 달리 낙서에서는 10이 빠진 아홉 개의 숫자만 등장하고 있으니, 그것은 본래의 온전한 하도로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9개의 영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9개의 영문을 통과하면 0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의 0은 0이 아닌 10이다. 0과 10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모양으로만 보아도 0은 아무 것도 없지만, 10에는 1이 붙어있다. 2가 붙으면 20이요, 3이 붙으면 30이라고 하는 걸 보면, 아홉 개의 숫자에 0이 붙어야, 다시 새로운 아홉 개의 숫자로 탄생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0이 죽는다면 0도 그렇고, 다른 숫자들도 다 같이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0이야말로 생성소멸하는 생명운동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런 0은 아홉 개의 숫자, 즉 영문이라는 문이 없으면 움직일 수도 없다.


움직이지 못하는 0은 죽은 영(靈)이다. 영은 모든 활동의 근본이기에, 그 속에는 장차 벌어질 온갖 형상과 변화가 들어있게 마련인데, 그 영이 죽은 영이라면 만물의 형상과 변화라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무형의 0이 살아서 움직인 결과가 바로 색(色)이라고 하는 건데, 그것은 九色으로 벌어진다. 흔히 말하는 ‘구색(具色)을 갖추다’는 말은 곧 九色을 가리킨다. 공즉색(空卽色) 색즉공(色卽空)은 이와같은 무형의 0이 살아 있는 모습을 가리킨 말씀이지, 결코 죽은 0에서는 불가능하다.


0과 10의 0은 본래 동일하지만, 0은 진공(眞空)상태를 가리킨 것이고, 구색을 갖춘 0은 10이라고 한다. 이걸 성경 식으로 말한다면 ‘0은 하나님’ 자체이고, ‘10은 만물 속에 내재한 하나님’이라는 말이 된다.


누군가 묻기를 “전능한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천지만물을 만들었나? 더구나 골치 아픈 인간들은 왜 만들어 놓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노아홍수로 다 쓸어버리는 무자비한 일을 한단 말인가? 애초부터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았으면 차라리 더 좋은 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숫자 0만 있으면 그만이지, 나머지 숫자들을 무엇 하려고 만들었나?“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0만 있으면, 죽은 영이듯, 만물이 없는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다. 즉 10으로 되지 못하는 0이라면 죽은 0이다. 0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홉 개의 숫자, 즉 영문을 알아야 한다.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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